경기 명소순례 : 용인 호암미술관 (II)
답사지 : 호암 미술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일자 : 2009년 9월 5일
날씨 : 맑음
호암 미술관 개관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이 30여 년에 걸쳐 수집한 한국미술품 1천 2백여 점을 바탕으로 '82년 4월 개관하였다. |
안내사이트 바로가기 : 호암미술관
사진 및 메모
호암미술관은 한국식 전통 정원인 "희원(熙園)"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미술관 내에는 꽤 많은 한국 고대 유물과 미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상의 호암미술관 주 관람 포인트는 미술관이라기 보다 전통 정원 "희원"과 그 주변에 산재된 유물들이 아닌가 싶다.
국립박물관이나 지방에 있는 유명 박물관 또는 같은 삼성그룹에서 운영하는 '리움 미술관'등을 둘러본 사람들이라면,
호암미술관 내의 유물이나 미술품에 큰 기대를 하고 가기보다는,
오히려 희원 곳곳에 자연스럽게 산재된 유물 들과 '벅수'들의 숲이나 '석인의 길'에 있는 많은 석물들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더 유익하고 우리 전통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유가 있으면 아름다운 호수가를 배경으로 석인들이 도열해 있는 풀밭에서 과거로의 여행도 한번 해보고...
석인의 길
미술관 앞의 호수가에는 "석인의 길"이 있는데 여기에는 정말 많은 석물들이 도열해 있다.
그들의 대부분은 왕족이나 고관들의 묘에 있던 문인석(文人石, 또는 문석인 文石人)과 무인석( 武人石, 또는 무석인武石人)들이다.
내가 지금까지 꽤나 많은 조선왕릉을 답사하면서 왕릉 앞의 수많은 문인석, 무인석을 만나고 특징들을 살피고 사진을 찍고 했지만,
지금까지 본 것 모두 만큼이나 이 곳 '석인의 길'에 많이 모여 있는 것 같다.
참고로 대부분의 왕릉(왕비릉 포함)에는 문무인석이 각 2쌍이 있다. 예외로 태종의 헌릉에는 특별히 문무인석이 각 4쌍이 있다.
문인석은 왕릉이외에 왕족의 묘나 고관대작의 묘에도 여러 크기와 형태로 배치하기도 한다.
무인석은 왕릉에는 있지만 세자의 원이나 대군묘에는 세우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큰 공을 세운 장군 등 무신들의 묘에는 문인석을 배치하기도 하고 무인석을 매치하기도 하는데 아직 그 기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건 앞으로 더 알아본다고 치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많은 석물들을 어떻게 수집했을까이다...
대충 둘러보니, 일부는 고려조 때 것으로 보이고, 또 일부는 조선조의 큰 벼슬을 한 사람들의 묘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또, 그 중에는 왕릉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그럴싸할만큼 장대하고 정교하게 잘 만든 것도 보인다.
여하간, 묘에 이 정도의 문무인석을 세울 정도면 세도 깨나 부렸을법한 고관대작들의 묘일테고 (어쩌면 왕족의 묘일 수도 있고)
그 자손들도 위세가 대단했을텐데 어떻게 묘를 지키는 문무인석을 이렇게 많이 뽑아 올 수 있었을까?
줄잡아도 50~100기는 되어 보이던데...
아마 우여곡절, 각종 방법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석물들 앞에는
본래 어느 지역에 있던 것이며, 시대는 언제적 것이었는지 등 아무런 표시도 없다.
희원내의 작은 조각에도 꽤 친절하게 표시를 하면서도..
어쩌면 알면서도 표시 못할 사연이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본래 누구의 묘지에 있었던 것인지를 알기가(밝히기가) 힘들고, 또 본래 자리로 돌려보내기는 어렵다 치더라도....
적어도 아는데까지 어느 정도는 설명을 해놓아야 한다고 본다.
아마 당시에 묘를 쓸 때는 내로라하는 지관들이 나서서 명당을 고르고
거기에 각종 격식에 따라 봉분과 석물들을 배치했을 터이다.
그리고 석물 하나하나를 조각하고 세울 때는 정말 많은 정성과 예를 갖추었을 것이다.
그런데, 각기 다른 곳에서 주인의 영혼을 지키던 문무인석들이 무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한 곳에 이렇게 많이 모여
아무런 표시도 없이 그저 좀 특이한 돌조각품으로 취급되면서, 그리 큰 관심없는 사람들의 구경거리로만 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흔치않은 귀한 문화유산이 한곳에 너무 많이 모여 있다.
그리고 너무 많으니 귀한 줄을 모른다.
세종대왕 영릉에도 4기만 있고, 태조 건원릉에도 4기만 있는데...
그래서 하나하나 특징을 보면서 꼼꼼히 살피고 감탄도 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역사적 유물에 대한 대접이 소홀해 보여서 유감이다.
여하간 이번에 수많은 문인석, 무인석들을 한꺼번에 만나게된 것은
이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의외의 큰 소득이었고 동시에 많은 숙제를 안고 왔다.
아래에 사진에 담아온 문무인석 중 단지 일부만 실는다.
크기, 복식, 표정 등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 볼수록 더 흥미롭다.
아직은 아는 것이 부족해서 답답하지만...
수많은 문무인석에 대한 설명이 이것이 전부이다.
석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휴식의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
많은 석인들의 표정이 못마땅해 보인다.
문익석... 조선조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즈나 복식으로 보아 중신들의 묘에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금관조복에 홀을 든 문인석
규모도 크고 조각도 섬세한 것이 왕릉에 세워도 될만하다.
아니.. 왕릉이나 세자의 원 같은데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조선후기쯤...
금관조복의 문인석은 정조대왕이 조성한 사도세자의 융릉에 처음 나타난다..
복두에 공복을 입은 장대한 문인석
마모도 많이 안되었고 크기도 상당한데 시대나 출처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다.
표정이 인자하고 세밀하게 잘 조각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조선조 중기의 왕릉이나 그에 준하는 묘에서 온 것으로 추정해 본다.
다양한 표정들의 문인석
(좌) 표정이나 마모정도를 보아 오래된 것 같다. 코 모양이 특이하다.
(우) 사모관대의 모양이나 복식을 보아 고려조의 것으로 추정해 본다
평면적인 조각으로 특이하다.
그냥 쉽게 만들려고 한것은 아닐테고 무슨 미술적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여기는 좀 기품이 없어 보이는 군
문인석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들
여기는 무인석
무인석은 왕릉 이외에는 잘 배치를 안하는데..(고위급 장군이거나)
규모로 보아서 조선조의 왕릉의 것 까지는 아닌 것 같고
왼쪽은 많이 마모되고 투구모습도 특이한데 고려조 때의 것이 아닐까?
설명이 없으니 답답하다.
아무리 무신이라지만 왼쪽의 얼굴은 사람모습이 영 아니군..
좀 무섭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 눈, 턱이 튀어나온게 괴물로 만들었네...
오른 쪽은 너무 왜소하고..
호석과 양석.. 일반 중신의 묘에나 썼을 법하다.
그런데 왕릉의 문무인석에는 마석이 하나씩 따라다니는데
왕릉이 아니라서 마석은 하나도 없나 보다..
석인의 길에 있는 돌거북.. 몇 개 더 있다.
벅수들의 세상
호암 미술관에서 또 한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이 바로 "벅수"들이다.
희원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서자 마자 만나는 것이 기묘한 모습의 수많은 벅수들이다.
예전에 좀 멍청하면서도 그리 밉지는 않은 사람을 칭할때 ‘벅수 같은 놈’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벅수를 수없이 만난다. 숲에도 숨어 있고 길가에도 서있고, 희원 뜰에도 떼를 지어 모여있다..
일이백기는 족히 될 듯한 벅수들과 또 벅수 비슷한 석물들이 희원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벅수가 아래 설명을 보니 마을의 수호신이고, 우리 고유의 미술품으로도 손색이 없단다.
시간이 없어서 대충 둘러보았지만 다음에 한번더 와서 자세히 살펴보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솔직히 말하면 앞에서 본 '석인의 길'에서와 마찬가지로, 벅수도 여기 한 곳에 너무 많다.
이렇게 씨를 말리듯 싹쓸이를 해버리니 마을이나 다른 박물관에는 찾아 볼 수가 없지...
외국에 달러를 끌어올 때는 그래도 되지만
문화사업은 이래서는 안될 것 같다.
그냥 두었으면 마모되고 훼손되었을 것을 모아서 잘 보존해준 것에대해서는 감사드려야 마땅하지만
이제는 지방 문화시설이나 박물관 등에도 기증을 하던지 대여를 하던지 아니면 돈 받고 팔든지간에 해서
좀 분산시키면 좋겠다.
서민들이 이곳까지 안와도 가까운 곳에서 좀 볼수 있도록...
벅수야 말로 마을단위로 있어야 할 유물이지 않은가?
내가 이 나이에 와서 오늘 벅수를 처음 보다니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후기를 쓰다보니 처음 생각과 달리 호암미술관에 약간의 실망스러움으로 맺게 되어 유감이다.
개선을 바란다.
아래에는 오늘 본 벅수 중 일부를 싣는다.
미술관 본관 옆의 벅수들의 정원
벅수들이 회의를 하나?
기묘한 모습의 벅수들이 숲속 여기저기 숨어있다.
"벅수들의 숲", "벅수들의 세상"이라고 할까?
수호신들이 수없이 모여 있으니 소원을 빌면 꼭 들어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 소원을 빌었다.
스님 벅수와 "서양" 벅수들
벅수의 눈들은 왜 모두 툭 튀어나오거나 뚱그렇게 좀 어설퍼 보일까?
정말 벅수같구나..
여기는 도깨비 벅수 동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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